유세차(維歲次) 모년(某年) 모월(某月) 모일(某日)에, 산쟁이 모씨(某氏)는 두어 자 글로써 등산화에게 고(告)하노니, 산에 다니는 인간의 발 가운데 중요로운 것이 등산화이로대, 산에 다니는 사람이 귀히 여기는 것은 발이 편해야 산행 길이 즐거운 바이로다. 이 등산화는 한낱 물건(物件)이나,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(情懷)가 남과 다름이라. 오호 통재(嗚呼痛哉)라, 아깝고 불쌍하다. 너를 얻어 나의 발을 너에게 의지하고 지닌지 우금(于今) 이 수 년이라. 어이 인정(人情)이 그렇지 아니하리요. 무거운 나의 몸무게에 더해서 무거운 배낭의 무게까지 감당하였고, 돌길이든 흙길이든 바위가 되었든 가리지 않았던 너이기에 나 더욱 더 슬프다. 눈물을 짐깐 거두고 심신(心身)을 겨우 진정(鎭定)하여, 너의 행장(行狀)과 나의 회포(懷抱)를 총총히 적어 영결(永訣)하노라.
이번 소백산 산행을 끝으로 또 하나의 정든 등산화가 퇴역을 하게 되어 너무 서운 하다. 나와 같이 몇 년간 산행을 한 정이 든 등산화인데,,,,
그것도 창갈이를 해서 처음 신고 나선 산행이었는데, 하산 길에 발가락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앞으로는 신고 산행을 할 수가 없을 것으로 결론을 내려버렸다,
동계용 레드페이스 비불암을 신고서 산행을 할 수도 없고 결국은 또 투자하지 않으면 안돼는 입장이 되었다. 등산용품 가게 주인장께서 무거운 등산화 창갈이하는 것 보다는 가벼운 고아텍스 등산화를 구입하시라고 권할 때 사버렸으면 창갈이 비용이라도 절약을 하지 않았을까 후회도 된다.
내가 처음 등산화라고 신고 다닌 것은 군화였다, 그 당시 생각으로는 발이 아주 편하고 좋았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.
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장비만큼은 좋은 것을 사용해야 되고 특히 등산은 발이 편해야 된다고 그 당신 꽤 비용을 들여서 등산화를 준비하였었는데, 몇 번 신지도 않고 남에게 물려주는 사고가 발생하였으니,,,,, 81년도 1월로 기억을 하는데 풍기 역에서부터 걸어서 희방사, 천문대, 연화봉, 비로봉, 국망봉, 신선봉으로 해서 구인사로 내려가는 길에 날이 어두워져서 (랜턴도 밧테리가 다 되었고,,,) 감으로 개울이고 진흙탕이고를 가리지 않고 걸어 내려 가다보니 신발 안은 온통 물과 흙으로 난리가 났었다. 영춘 백자리에 도착해서 인심이 후한 민박집에서 대접을 잘 받아가면서 하루 밤을 잘 보내고 아침에 신발을 신으려고 하니 발이 잘 안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,,,, 등산화는 깨끗하고 또 속이 뽀송뽀송하게 잘 말라 있었고,,, 우째!! 이런 일 생겼을까? 착하디착하고 인심이 후한 아주머니가 등산화를 보니 너무나 딱해서 깨끗이 닦고 부뚜막에다 올려놓고 말려 주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을 하시는데,,,,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가 있었겠나?
그 등산화를 신고 돌아 오는 동안 발가락에 무리가 가서 결국 양 엄지 발가락 발톱이 빠지는 황당한 일을겪었었다.
그리고 다시 준비한 등산화는 창갈이까지 해가면서 정말 오랫동안 신고 다니다가 위피가 찢어지면서 퇴역을 시켰는데, 다 떨어진 그 등산화를 이사를 할 때마다 장비가방에 넣어서 갖고 다니다가 언젠가 마눌님이 버려버렸다. 이번에 퇴역한 등산화는 비불암과 같이 준비해서 아주 오랫동안 신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,,,,, 그 동안 내가 구입을 하여서 신었던 등산화는 모두 레드페이스 제품이다. 중등산화를 비롯해서 티롤리안까지 총 4컬레를 창갈이해 가면서 참으로 오랫동안 애용을 하여왔다. 산에 다니는 사람이면 누구나 장비욕심을 부리지만 그래도 등산화만큼은 정말 욕심을 부리면서 거액을 투자들을 한다.
정말 이번에는 남들이 자랑스럽게 신고 다니는 가볍고 좋다는 그 고어텍스 등산화를 준비해야 될 것 같다. 그러면서도 자꾸 옛 등산화에 애착이 가는 것은 왜 일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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